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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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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도 화를 주체할 수 없다면?
THE WALL STREET JOURNAL
17. October 2012
By ELIZABETH BERNSTEIN
리처드 레이머(51)는 어느날 아침 맨해튼으로 가는 통근열차에 앉자마자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톡톡톡톡톡톡. 톡톡톡톡톡톡. 소리는 무려 45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승객들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눈을 굴리고,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 목을 길게 빼고 노려봤다. 경영 관련 책을 집필하던 레이머는 독서에 몰두하려고 했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피할 방도는 없었던 터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소리 좀 낮춰주실 수 있으실까요?”
남자의 반응은? 레이머는 “내가 그 사람에게 뜨거운 커피를 쏟았거나 발로 찼을 때나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고 회상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제 타이핑까지 조용히 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해?”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남자는 몇 분 동안이나 큰소리로 불평을 늘어놓더니 이렇게 끝맺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남자가 장광설을 늘어넣는 동안 침묵을 지키던 레이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톡톡 거리는 소리가 안 나게 설정해 주세요.”
근처에 있던 승객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자리에 풀썩 앉더니 소리가 나지 않게 설정을 바꿨다.
그래픽 보기왜 다 큰 어른들이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버럭 낼까? 물론 예전보다 예의범절이 중시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지만, 남들보다 더 무례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모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고객서비스 담당자나 배우자에게 자기 좋을 대로 소리를 지른다고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닐까?
듀크대학교 연구진은 곧 발표를 앞둔 논문에서 사람들이 하찮은 이유 때문에 이성을 잃는 이유를 조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는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격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울부짖던 한 마디가 있다.
“불공평해!”
연구진은 이 불문율에 ‘사회 교환 원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친절하고 공평하며 솔직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 새치기를 하면 안 되고, 안전운전을 해야하고, 물건을 쓰거나 장소를 사용하고 나서는 뒷정리를 해야 한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마이클 리어리 듀크대학교 심리학•신경과학 교수는 “한 사람이라도 이 원칙을 어기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면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거나 비윤리적일까봐 의심이 되거나 상대방이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알 수 없다면 모두가 이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분노를 폭발시키고 나면 대개는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토론토에서 소셜네트워크 업체를 창업한 데이비드 카츠(38)는 친구가 키우는 노견 시추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가 블랙베리로 타이핑을 하느라 정신을 팔다가 개를 밟을 뻔 했다.
카츠는 남자의 손에서 블랙베리를 뺐고는 앞을 좀 보고 다니라고 주의를 줬다. 둘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블랙베리를 들고있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리 아단이야? 강아지 한 마리 가지고.”
카츠는 남자를 주차돼 있던 밴으로 밀어붙이고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 더 마주치면 그땐 가만 넘어가지 않겠어.”
카츠는 “나도 잘 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카츠는 남자를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데, 서로 못 본 척 눈을 내리깔고 지나간다며 “어색해 죽겠다”고 고백했다.
부끄럽지만 필자도 흥분했던 적이 없지않다. 필자는 노트북 잠금해제가 되지않아 전화를 붙들고 고객상담실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성을 잃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몹시 친절하고 인내심이 남달랐던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심호흡 한 번 하시겠어요? 물 한 잔 드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픽 보기리어리 교수는 몇 년 전 일명 ‘피클 사건’을 목격한 후에 사람들이 왜 사소한 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하기로 했다. 리어리 교수는 문제의 남자를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햄버거를 냅다 던지고는 “왜 내 햄버거에 피클이 들어있냐”고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이렇게 멍청한 직원은 해고시켜야 한다고 떠들었다. 직원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직원이 햄버거를 다시 만들어서 건네주자 남자는 자리를 떴다.
이 장면을 본 리어리 교수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사회적 불문율을 누군가 위반했을 때 온세상이 다 알게 해야한다고 믿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리어리 교수는 “당시 문제의 핵심은 피클이 아니었다”며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해서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거나 상대방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내가 손해를 보거나 불리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건 당사자 둘 다 서로 모욕감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살루다 소재 홍보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미셸 테넌트(43)는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에서 ‘대기선’이라고 써진 표지판 뒤에 줄을 서 있었다. 테넌트의 차례가 되자 직원이 계산대로 나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때 그녀로부터 네 번째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내가 먼저”라며 끼어들었다.
테넌트는 ‘대기선’ 표지판을 가리켰다. 어린 딸과 함께 온 여자는 “내가 대기선을 착각하고 줄을 잘못 선 것뿐이니까 먼저 계산하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테넌트는 옆 계산대로 피했다. 테넌트와 직원은 이상한 여자라는 눈짓을 교환했다. 그동안 여자는 “내가 먼저 계산해야한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전문가들은 자주 화가 난다면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스스로 과학자가 되어 화를 돋운 ‘도화선’을 알아내고, 과민반응을 자제하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한다.
꾸물거리는 도로의 운전자가 짜증난다면? 평상시보다 일찍 출근하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 화를 억누르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심호흡을 하고 1부터 10까지 세어보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떠올리자.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를 내고 나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고 되뇌이자.
뉴욕 소재 웨일 코넬 의과대학교 교수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스티븐 조셉슨은 “살다보면 화가 나게 만드는 상황을 피할 수 없지만, 자극이 올 때마다 일일이 반응하지말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자주 화를 낸다면 자신의 행동을 먼저 인식하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리어리 교수는 현재 연애 중인 200명에게 사소하지만 짜증스럽거나 거슬리는 연인의 습관을 떠올려보라고 시켰다. 그러고는 그 습관이 그들의 인생(돈, 일, 전체적인 행복감)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습관이 얼마나 불공평하거나 무례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실례가 되거나 사회 교환 원칙을 위반하는지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다.
응답자 모두 성별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자기를 짜증나게 만드는 연인의 습관을 적었다. 원칙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더 잘 내는 경향을 보였다. 사회 교환 원칙을 어길 경우에는 실제적인 피해를 입었을 경우보다 30% 더 화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사소한 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중 3분의 1이 그 사소한 일 때문에 인내심이 한계를 넘었다고 답했다.
조너선 야미스(57)는 어느 오후에 쇼핑몰에 들어서다가 픽업트럭을 추월했다. 야미스가 주차하려고 하는데 트럭이 그의 자동차 바로 뒤에 멈췄다. 코네티컷 주 스탬포드에서 IT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야미스는 “싸움이 나겠구나 직감했다”고 말했다.
기골이 장대한 운전자는 격분해서 “당신이 프로레이서라도 되냐”고 소리쳤다. 아마추어 레이싱을 몇 번 해본 야미스는 “레이서 맞다”고 응수했다. 남자는 놀라더니 “레이서면 다냐”고 맞받아쳤고, 야미스는 “그래, 다다”라고 말했다.
“남자도 웃고 나도 웃었다. 우리는 결국 그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점심값은 내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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