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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핑계로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곳이니 서재라 불러도 되겠지만, 아니면 글을 쓰는 때가 많으니 작업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방이라 부르는 게 담백하니 좋습니다. 그간 많은 방을 거쳐 왔습니다. ‘잠만 잘 분’이라는 문구가 적힌 월세방을 찾아 옮겨 다닌 적도 있었고 집필을 핑계로 숙박업소에서 장기 투숙하는 이른바 달방을 구한 적도 있습니다. 종종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낯선 방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적어도 방이 집의 하위 개념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살면서 처음 갖게 된 방이 종종 떠오릅니다. 중학교 진학할 무렵이었습니다. 전 집주인이 창고로 쓰던 좁은 공간이 제 개인파산면책사례 게 주어진 것입니다. 도배지가 발리고 장판이 깔렸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책상까지 들어오자 제법 그럴듯한 방이 됐습니다. 번쩍번쩍 빛이 나던 유광 책상. 왼쪽에는 허벅지 정도 높이의 3단 서랍이 있었고 그 서랍 위에 제법 넓고 긴 판자가 놓였으며 판자의 오른쪽 끝은 제 키보다 훨씬 큰 책장과 연결됐습니다. 가정용 컴퓨터 보급이 한창이던 시절답게 책장 하단에는 신용보증기금 실사 컴퓨터 본체를 넣을 공간도 있었고요.
마냥 신이 났습니다. 밥도 책상에서 먹고 잠도 책상에서 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상에 묶여 있다는 생각, 방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방에는 창문이 없는 벽, 점점 빼곡해지는 참고서와 교과서. 온갖 기대로 가득했던 곳이 어느새 공부만을 위한 방이 된 것입니다. 물론 학업에만 매 국민카드사 진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때부터 저는 끊임없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방을 뛰쳐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있었으니까요. 한 장 한 장 펼쳐 넘길 때마다 책은 창문도 되고 문도 되고 길도 되고 낯선 풍경도 돼 주었습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독서율은 날로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국민 마이크레딧뱅크 10명 중 6명 정도는 1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득에 따른 독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월평균 200만원 이하 소득자가 월평균 500만원 이상 소득자에 비해 다섯 배나 적은 독서량을 보이는 것입니다.
무엇이 독서를 멀어지게 할까요.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시간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먹고 개인신용회복제도 사는 일 탓에 일상의 빈틈이 좀처럼 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앙상해진 통계와 수치보다 저를 더 안타깝게 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다양해진 콘텐츠 환경에서 독서만이 유일한 삶의 정도(正道)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글을 쓰고 살아가는 저이기에 누군가의 눈에는 날로 작아지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작가들은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읽는 사람입니다. 현실이 나를 바짝 죄어들수록 책이 열어주는 길이 얼마나 넓은지, 이것이 한 존재의 숨통을 얼마나 트이게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말하지만 책 읽기 좋은 때와 장소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굳이 정한다면 오늘 이곳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눈에 담아두기 딱 좋을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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