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26 15:18
화난 감정 들여다보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053  
화나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화란 감정 자체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기에 회피하거나 억압해야할까. 긍정적 감정, 좋은 느낌만을 표현하고자 해서 실제로 가슴을 태우는 분노 감정을 부인하고 회피하면 그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무의식으로 가라앉아서 곪기 시작한다. 그것이 마음과 신체에 작용하여 병을 불러올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서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우리나라 문화 특유의 증후군으로 등재한 홧병. 그 병도 어찌보면 귀머거리3년, 봉사3년, 벙어리 3년이란 강요된 기간을 거치면서 자기표현이 힘들었던 사회에서 나타난 특유의 현상으로 본다. 병으로라도 나타났을 때 감정의 응어리가 무엇인지, 어떤 경험이 감정의 응어리로 맺혀서 풀리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날 때 어떻게 적절하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감정은 몸의 반응이다. 사고가 반복되면 자동적 사고가 형성되고 그 사고에서 하나의 관점과 틀이 만들어져서 특정 상황에서 더 높은 빈도수로 화를 내게 된다. 어떤 상황이 나에게 심각하게 화를 불러일으킬 때는 나의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이 관련된 경우가 많다. 그런 경험과 기억의 영향으로 내 속에 있는 그 감정이 건드려지면서 더 강도 높은 화가 나게 된다.

화란 감정을 다루는 것은 위험하기 쉽다. 화를 쌓아두지 않으려고 나오는대로 폭발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 주변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관계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남들에게는 화가 난다고 함부로 화를 내지 못하다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마음대로 화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지속되어야할 소중한 관계에서 내 마음대로 분노감정을 표출하다보면 가족내에서 상처받은 또다른 홧병 환자가 생겨날 수도 있다. 아니면 우울증으로 빠져드는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여성은 화를 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도록 사회화되었다. 여성의 미덕은 관계친화적이고 순종적이고, 다른 사람을 챙기고 배려하는 것으로 강조되어왔다. 여성은 다른 대부분의 감정표현에 대해서는 허용적이지만 화를 내거나 분노상황에 직면해서는  바로 표출하지 못하고 완화시키거나 회피, 혹은 그냥 억눌러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감정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나약하여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은 남성들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생존에 치명적이다. 오늘날 사회가 많이 다변화되고 성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러한 관념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들에게도 허용된 감정표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분노감정이다. 분노감정의 표현은 남성다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허용되고, 때로는 남성적으로 미화되어 포장되기도 한다. 불의에 대해 분노하며 의협심을 발휘하는 것, 외세에 의해 나라가 위태로와졌을 때 조국수호를 위해 분연히 앞장서는 것,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여워하며 바로 잡는 것 등.

그러나 생활 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분노상황은 미화되기 힘든 것들이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마음에 안드는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잘 낸다.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심장부위와 어깨근육이 움찔대고, 두 손에 힘이 들어가서 뭔가 내려치거나 집어던질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위협적이며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화날 때 큰소리를 내는 것은 거의 일반적이다. 그래서 아내들은 남편이(자녀들은 아버지가) 큰소리만 내도 심장이 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바깥에서 사회적 관계유지와 생존경쟁을 위해 애쓰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참아온 화를 아주 작은 계기로 아내나 아이에게 터트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터트린다는 표현은 조절하지 않고 나오는대로 막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화를 터트리는 대상은 본능적으로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이다.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조절하거나 아예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약하거나 만만한 대상에게는 거르지 않고 나오는대로 터트리는 것을 보면, 감정표현도 계산되어 표출된다고 볼 수 있다. 즉 표현방식은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분노감정이 강렬하게 솟아나 호흡을 가쁘게 하여도, 표현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 타임을 이용해 조절해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분노표현 방법에서 위협적으로 소리치면서 물리적 힘을 동원하여 폭발시키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나 전달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표현이 잘 되면 상호이해를 높여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부부 사이에서 어느 쪽이든 배우자 일방이 화를 잘 낸다면 관계 개선의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화를 터트려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관계가 너무 악화되면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려는 시도도 어렵고, 그 가능성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된다. 좀더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화를 조절해서 표출하는 것은 화난 감정 자체를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신체적 심리적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화가 올라오면 적절하게 해소하는 표현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해소되지 못한 화가 무의식에 응결되어 여러가지 증세와 결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때는 오래 전 경험과 기억 속에 응켜있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을 풀어내야 치유될 수 있다.

모든 감정은 소중하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주어진 선물이다. 감정은 막히지 않고 흐르게 해야한다. 그 감정들을 섬세하게 느끼고 들여다보고 그 감정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때, 삶이 더 풍성해지고, 관계가 더 생기있어지고, 지금 여기에서 더 생생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여아림 부부상담심리연구소
소장 최혜숙